넷플릭스 아나벨 없는 900일 후기

 시대가 만든 비극

1993년 대낮에 부촌에서 벌어진 여대생의 납치 사건으로 스페인은 발칵 뒤집힌다. 

20대 초반의 여성 아나벨은 부모님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 와서 학업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기 위해 가볍게 운동을 나갔다가 갑자기 납치가 되어버린 이 소녀는 900일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벌이진 일로 아나벨이 살던 곳은 부촌이었으나 조깅을 하러 나가야 했기에 경계가 나름 삼엄한 주택 단지를 벗어나야 했고 얼마 가지도 않아 납치되어 버린다. 

다른 집에서 일하던 정원사가 아나벨이 납치 당할 당시 소리를 듣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워낙 멀리 있던 탓에 범인들의 차량이나 얼굴을 제대로 보질 못 한다. 아나벨이 사라진 자리에는 워크맨과 아나벨의 운동 당시 입고 있던 옷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 이후 아나벨의 부모님이 휴가에서 돌아오시고 아나벨 납치범들로부터 전화가 오기를 기다린다. 

아나벨의 부모님은 부유한 사람들이었으나 최상류층의 부유한 사람들은 아니었고 범인들이 요구한 1억 5천만 페세타를 하루 아침에 만들기는 힘들었기에 지인과 친척들로부터 그 많은 돈을 빌리게 된다. 당시 마드리드 아파트 한 채가 2백에서 3백만 페세타 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얼마나 터무니없이 많은 액수였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납치범들과 처음으로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당시 기술로는 무전기를 하려면 통신 장비가 필요했는데 그걸 헬기에 실어서 잠복해 있던 터라 범인은 물론 모두가 헬리콥터의 소음을 들을 수 밖에 없었고 한 장소에 오래 머물러 있던 헬기 덕분에 모든 일이 어그러지고 만다. 경찰 역시 헬기 소음이 시끄럽다는 걸 알고는 있었으나 아무도 이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게 의외라면 의외다. 

한 마디로 오합지졸 경찰 덕분에 첫 번째 기회를 날려 버리는데 이후 납치범들은 흥분한 상태로 전화해서 두 번째 접선 장소를 이야기해 준다. 하지만 그 장소에도 납치범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아나벨의 살아 있는지 조차 의문스러운 상태였기에 다음에 온 전화에서 경찰들은 아나벨이 살아 있는 증거를 요구한다. 며칠 후 아나벨의 음성이 도착하는데 아버지와 가족들은 이미 쇠약한 상태였기에 이게 아나벨의 음성인지 아닌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듣자 마자 아나벨의 아니라고 아버지는 확신하지만 아나벨의 상태가 어떠한 지 알 길이 없기에 현재 아프다면 이런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고 결론 내린다. 하지만 그 이후 납치범들로부터는 전화가 없고 어떠한 연락도 없이 시간이 흐른다. 거의 3년 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사건이 잊혀질 즈음 스페인 국민들이 들고 일어서고 경찰은 다시 한 번 본격적으로 수사를 하기 시작한다. 

유명한 시사 제보 프로그램에 나가서 범인의 목소리를 방송을 통해 직접 들려 주고 그 방송을 통해 들어온 결정적인 제보를 통해 범인을 드디어 특정할 수 있게 된다. 범인이라고 의심이 되는 용의자들의 전화를 도청해서 그 가족에게 접근할 수 있었는데 가족과 사이가 안 좋은 틈을 노려 이들의 범행에 대한 단서를 제공 받고 결국 납치범 두 명을 극적으로 체포하게 된다. 

하지만 아니 역시나 아나벨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황당한 건 이들이 아나벨을 납치하고 겨우 7시간도 안 되어 죽이고 나서 암매장을 했다는 사실이다. 사건을 주도한 납치범 중 한 명은 아나벨을 납치하고 나서 바로 몸값을 받을 수 있을 줄 알고 아나벨을 감금할 장소도 물색해 놓지 않았는데 아나벨의 부모가 휴가를 갔을 거라는 변수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자 당황하였고 아나벨의 탈출을 감행하려고 하자 투닥거림 끝에 아나벨을 죽이기로 결론을 내린다. 

사실 이 때 그냥 아나벨을 풀어 주었다면 나름 가벼운 형량을 선고 받았을 텐데 아나벨을 납치한 것도 모자라 죽여 버렸으니 법정 역시 최고형보다 더 높은 형벌을 선고한다. 무려 43년 형을 선고 받았는데 아나벨의 납치를 알고도 입을 열지 않은 납치범들의 부인 역시 2년이 넘는 형을 선고 받게 된다. 

범인들은 아나벨을 납치하자마자 죽여 놓고서는 파렴치하게 아나벨의 부모에게 1억 5천만 페세타를 요구했었고 아나벨의 목소리라고 녹음한 여성은 납치범들의 범죄를 알고도 은폐한 여성이었다. 한 마디로 아나벨의 부모는 물론 스페인 국민들을 대놓고 우롱한 범인들인데 범정에서도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없었기에 최고형보다 높은 형벌을 받았다고 예상해 볼 수 있다. 

1993년대라고 하면 아주 오래전은 아니지만 당시 과학 기술이 지금처럼 많이 발전한 것도 아니었고 지금처럼 자동차용 블랙박스나 감시 카메라가 사방에 있는 시대도 아니었기에 사건 해결에 무려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버렸다. 물론 아나벨의 바로 죽어 버렸기에 아무리 급하게 해결했어도 아나벨의 목숨을 구하긴 어려웠겠지만 지금이라면 아마 바로 추적해서 아나벨을 구출할 수도 있었기에 저 시대에 태어난 아나벨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대낮에 조깅을 하다가 납치되는 게 일상인 것도 조금 신기할 따름이다. 심지어 부촌 근처라고 하면 안전이 보장된 곳일 텐데 저런 곳에서도 저 당시에는 여성들이 빈번하게 납치를 당했다는 게 경악스럽다. 아나벨은 머리도 좋고 학업 성적도 우수한 데다가 성격마저 좋아서 모두에게 사랑을 받던 인물이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경험을 쌓았는데 어이없게도 집 앞에서 납치를 당한 이후 6시간 반 만에 주검이 되어 버렸다. 이런 거 보면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아나벨의 만약 그 시간대에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면 아니 부모님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라는 가정을 당연하게 생각해 보게 되는데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시간에 있어서 만약이라는 건 무의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황당하기는 하다. 

납치범들은 경제적인 빈곤으로 납치를 저질렀다고 고백 하였는데 부촌에 사는 만만한 상대를 물색했다는 거 보면 아나벨이 아니라 다른 여성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면 당시 스페인의 치안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 역시 80년대나 90년대 이런 납치 사건이 많았다. 당시 납치 사건 소재로 영화로 많이 만들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린이들의 납치 사건은 주로 몸값을 요구하는 엔딩으로 마무리 되지만 여성들을 납치하는 경우 몸값을 요구하기 보다는 매춘업소에 팔아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도 유럽에서는 혼자 여행 온 여성들을 납치해서 제 3세계 국가 매춘업소에 팔아 넘기는 인신매매 사건이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치안이 안 좋은 나라는 물론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여성 혼자 여행하는 걸 안전하게 보지는 않는 사람이다. 봉고차를 탄 성인 남자들이 무력으로 제압하면 여성은 물론 남성도 혼자 탈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유럽처럼 난민들이나 불법 이민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마음대로 국경을 넘어 인신매매를 하면 그걸 다 단속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영화 테이큰 같은 일은 정말 영화에서만 벌어지기 마련이다. 

지금도 스페인에서는 아나벨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당시 벌어진 어떠한 납치 사건보다 더 억울한 측면이 분명 많았을 테다. 매춘업을 하는 여성도 아니었고 말 그대로 곱게 자란 부유한 어린 여성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지 않았을까. 

다큐멘터리 자체는 조금 평이한 측면이 있긴 한데 그럭저럭 재미있게 감상했다. 

평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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