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넷플릭스 영상 번역가 준비를 포기한 현실적인 이유

나는 직업 특성 상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데다가 코로나 때문에 직업 안정성 마저 위기를 맞이하자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며 올해 초부터 이런 저런 일들을 찾아보면서 구글링을 해보기도 했다. 사실 지금 가지고 있는 직업을 당장 그만둘 용기도 여유도 없기 때문에 이 직업을 유지하면서 무슨 일이 있을까 하던 찰나에 넷플릭스 영상 번역 알바가 요즘 뜬다는 신문기사 가 갑자기 기억이 났다. 

年1500개 넷플릭스 콘텐츠…날개 단 '영상번역'

기사만 찾아 보았을 때에는 영상 번역 시장이 호황이라 인재들을 서로 모셔 가려고 한다는 내용이 전부 였다. 원래 기사라는 게 현실감이 전혀 없고 과장이 많긴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때인지라 급작스럽지만 영상 번역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나는 넷플릭스를 통해서 영상을 자주 보기도 하는데 인기 작품이 아닌 경우 번역이 엉망인 경우를 상당히 많이 보아서 내가 해도 저 정도보다는 잘 하겠다 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실제로 넷플릭스 커뮤니티를 가보면 넷플릭스 번역이 엉망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자주 올라와 있는데 넷플릭스도 갑자기 영상 콘텐츠가 한 번에 쏟아지다 보니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번역을 맡기게 되었고 그 폐해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거 아닐까 한다. 사실 나도 넷플릭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를 보며 느끼는 거지만 오타는 양반이고 오역에 직역에 아주 개판 오분전인 번역도 정말 많다. 

그래서 이런 저런 영상 번역 학원도 알아보고 유투브도 알아보면서 만약에 회사에서 무급 휴가를 길게 줘서 6개월 이상 쉬어야 한다면 학원을 등록하고 전문적으로 한 번 배워 봐야 되겠다 싶었다. 최근 들어 직장인들이 부업으로 영상 번역을 많이 하며 영상 번역 학원이나 과정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실제로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같은 업체가 들어오며 영상 번역 관련 수요가 폭증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영상 번역가 

게다가 영상 번역이라는 작업은 영어 실력 보다는 오히려 국어 실력이 더 중요한 분야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나 역시 희망이 생겼다. 이렇게나 발전하는 시장이라면 나 역시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사와 유투브만 보다가 문득 구글링을 안 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현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 기레기들이 쓴 낚시성 기사나 학원 홍보물만 읽고 시작하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글링을 통해 실제로 영상 번역 초짜들이 얼마나 돈을 버는지와 현재 영상 번역 학원을 하시는 분의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나름 처참한(?) 현실을 알 수 있었는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현실은 내 예상보다 더 거지같았다. 

1, 영상 번역 초짜들은 초기에 제대로 돈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제일 많은 황석희 번역가 님도 인터뷰에서 번역가로 막 활동하던 시절에는 제대로 돈을 못 받고 떼인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런 일을 비단 황석희 번역가님만 당한 게 아니라 지금은 월 5백도 무난하게 버는 분들 역시 초반에 에이전시를 잘못 만나서 돈을 못 받은 일이 너무 많다는 증언들이 구글에도 수백개가 넘게 나왔다. 넷플릭스가 직접 번역가들에게 입금을 해주는 구조가 아니라 큰 업체를 고용하면 그 업체가 새끼 업체를 고용해서 일을 나눠 주는 방식이라 새끼 업체들이 번역가들에게 제대로 된 돈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지금까지도 너무 많아서 큰 문제인데 이는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초보 번역가들의 돈을 떼어 먹는 업체들이 절대적으로 나쁜 거긴 하지만 이러한 업체들을 감독할 만한 기관이 없는 것 역시 문제라고 생각 한다. 넷플릭스나 OTT 업체가 이 문제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 같지도 않고 업계의 오래된 관행이라 근시일 내에 해결되기도 어려워 보인다. 사실 번역가들의 돈을 떼어 먹는 문제는 넷플릭스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번역 시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이 문제에 대하여 크게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아직까지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2, 돈도 별로 못 받는데 번역 수당도 생각보다 높지 않다. 

업체마다 다르고 경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40분 분량의 영상 콘텐츠 하나 번역하면 초보 같은 경우 1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물론 그 이하로 받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물론 경력자라면 이 정도 분량이면 하루에 다 마무리할 수도 있지만 초보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전혀 알 수 없다. 하루 한 편을 처리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보통 한 편당 이틀이 걸린다고 치면 한 달에 150만원 정도를 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돈을 받지 못하는 것도 생각해 보면 한 달에 올인해서 일을 했을 때에도 백만원 정도의 수익 뿐이다. 

그래서인지 10년을 넘게 번역 일을 전문으로 하시던 분도 다른 직업으로 이직을 하시는 경우도 많다고 하시던데 번역 일 자체는 상당히 고된 반면 금전적인 수익은 크지 않아서 의외로 오래된 경력자 분들도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실제로 네이버 블로그에서 번역 학원을 하시는 분의 직원들 중 일부 역시 경력도 길고 번역 능력이 탁월함에도 돈이 안 되는 현실에 부딪쳐 그만두는 일이 많다고 하셨다. 

3, 잘 하는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데다가 인공지능 번역의 급부상.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이 일 역시 인재들에게 일이 몰리는 경향이 크다. 그러니 초보자들은 몇년이 걸릴지 모르면서 시장에 안착해야 하는데 그 전에 인공지능 번역이 급속도로 발전한다면 초보자들은 영영 초보 단계에서 머물다가 시장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인재들에게 일이 몰리는 건 내가 인재가 되면 해결될 일이지만 인공지능 번역의 급부상은 미래의 내 직업 안정성을 송두리째 앗아갈 큰 위험요소임이 틀림 없다. 나는 사실 이 문제 때문에 번역가 과정을 알아보는 걸 그만둔 게 가장 크다. 

물론 인공지능은 사람처럼 매끄러운 번역을 아직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둑 기술을 익힌다거나 사람의 질병을 진단하는 왓슨 인공지능처럼 인공지능의 발달 속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완벽하게 번역을 하지 못할지라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인공 지능이 번역을 한다면 사람은 그저 감수하는 역할에 머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감수 역할도 몇년이 가지 않을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이 일을 준비하는 데에 뛰어 드는 건 너무 위험 부담이 많아 보였다. 

인간의 언어 패턴을 수만 수억 수조가지를 입력하다 보면 인공지능은 결국 사람처럼 말하고 사람처럼 번역하기가 더 수월해질 거라고 본다. 이틀이 걸려 할 일을 인공지능은 30초도 안 되어 할지도 모르는데 그런 경우에 과연 사람이 피땀 흘려 번역을 매끄럽게 한다고 한들 경제적인 면에서 경쟁이 될까? 

- 그래도 좋아한다면 시작해야. 

이런 저런 불안 요소가 많지만 그래도 좋아한다면 도전해 보는 걸 말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결국 인공 지능에게 일을 빼앗기느니 다른 걸 해보는 게 낫겠다 싶어 포기하긴 했다. 하지만 언어 능력이 뛰어나고 번역에 흥미를 느낀다면 지금 당장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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