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정도로만 승부하는 요리의 세계
흑백요리사가 난리를 넘어 신드롬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보통 이런 경쟁 프로그램은 회차가 거듭할수록 화제성이나 관심도가 줄어들기 마련인데 흑백요리사는 그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매주 화요일마다 공개가 되고 있는데 공개될 때마다 역대급 화제성을 기록하면서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이미 흑백요리사에 나온 맛집이나 레스토랑은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고 이들이 프로그램에 나와서 만든 요리까지 출시를 앞두고 있다.
재미있는 건 둘째치고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열광하는 건 분명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경연 프로그램을 많이 봐서 비교해 볼 만한 게 많은데 흑백요리사가 어마무시하게 특별하다거나 하지는 않다는 점이 좀 신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역대급 인기를 누리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일단 이런 요리 경연 예능이 정말이지 오랜만에 나왔다.
그동안 방송사나 OTT 에서는 어린 소년 소녀들을 데리고 아이돌 그룹을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 런칭을 많이 했고 공중파에서도 뛰어 들며 불을 지폈는데 그러는 사이에 전문직들이 경연을 하는 경쟁 예능은 어느 순간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모델이나 패션 디자이너 뽑는 경연 예능도 재미나게 본 터라 그런 소재 자체가 아예 명맥이 끊어진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나마 요리 경연 예능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어지긴 했는데 그것도 몇 년 전부터 아예 안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흑백요리사는 생각 이상의 완성도로 무장했고 경연 프로에 나오는 게 이상할 정도의 대가들이 나오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모르긴 몰라도 흑백요리사 이후 분명히 방송사나 OTT 에서 비슷한 경연 프로그램을 준비할 게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분명 말하지만 흑백요리사 정도의 완성도나 재미는 기대하기 힘들 거다. 일단 넷플릭스 만큼의 자본력도 없는데다가 요즘 방송가가 돈이 없어서 저 정도의 프로그램을 만들 제작비도 가지고 있지 않아 넷플릭스가 흑백요리사 시즌2를 만드는 걸 기다리는 게 더 합리적이다.
이런 말하면 입 아프지만 돈의 힘은 무시하기 어렵다.
넷플릭스의 자본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부분이며 넷플릭스가 주력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서구권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 나라의 제작비는 상대적으로 아주 저렴한 수준이다. 그런데 콘텐츠 파급력은 상당하다 보니 미국에서 들어가는 돈의 절반만 투자해도 역대급 퀄리티가 나오고 그에 더해 한국의 예능 제작 수준은 세계적인 터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선순환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문제라면 국내 OTT나 방송사는 넷플릭스같은 자본력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점이다.
자세히 보면 보이는데 넷플릭스가 얼마나 돈을 썼는지가 흑백요리사 곳곳에 보이는데 저게 다 돈이라는 걸 생각해 보자면 확실히 예능이나 드라마나 돈이 있어야 퀄리티가 올라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티빙 공급 예능도 이제 새로운 시즌이 넷플릭스로 들어오는 걸 보면서 자본력은 무시하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제외하고도 나는 사람들이 갑자기 흑백요리사에 열광하는 건 역시나 심사의 공정성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 주 화요일 공개된 회차에서 공정성 논란이 나온 것 역시 비슷한 결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팀전을 하면서 갑자기 막판에 3명을 각출하여 새로운 팀을 만들어 나름 불공정하게 판을 다시 한 번 짠 건데 말 그대로 누군가를 떨어 뜨리기 위해 급조된 팀이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우나 이런 게 경쟁 프로그램이라는 걸 생각해 보자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고 역시나 온갖 변수가 존재한다.
흑백요리사는 너무 세팅된 환경이기에 인위적으로라도 변수가 필요했고 제작진이 변수를 인공적으로 주입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화제가 되었으니 이런 제작진의 기획은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말이 나온다는 거 자체가 예능으로는 제작진의 감이 좋았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거의 매주 회차가 공개가 될 때마다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토론할 만한 무언가를 제시하는 예능만큼 성공한 예능도 없다.
오히려 예능에서 가장 무서운 건 무관심이며 무난하게 지나가는 거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특히 이러한 불리한 팀구성은 사람들의 공정성에 대한 열망에 불을 질렀다. 즉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긁은 거다. 그러나 세상은 공정하지 않고 그나마 공정하게 심사하는 흑백요리사가 마음에 든 거였는데 자기 생각이지만 이렇게 불리하게 팀을 구성해서 그동안 사람들이 좋아했던 참가자들을 떨어 뜨린 건 무리한 설정이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흑백요리사가 공정성의 상징처럼 받아 들여지고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정의라는 개념을 이야기해 볼 만한 주제가 되었다. 단순하게 맛으로만 평가하기 위해 백종원과 안성재의 눈에 검은 안대를 씌우게 만든 변태 제작진이기에 그에 대한 반발도 상당한 듯한데 나는 이게 크게 보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렇게까지 말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다. 어차피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며 결국은 결승에 누가 올라가느냐의 문제인데 이런 사소한 부분에 이렇게나 긁히는 건 그만큼 이 프로그램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역으로 보여준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흑백요리사만큼 공정성에 최선을 다한 경연 예능은 일전에 본 적이 없다. 백종원과 안성재 심사위원에게만 의지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심사 방법을 마련해서 최대한 공정성에 흠이 가지 않게 만들었다는 점도 놀라웠고, 흑과 백으로 나눠 경연을 펼치는 방식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팀을 나눠 경연을 진행한 요리 경연 프로그램은 없기 때문이다. 보통은 흑팀은 흑팀끼리 백팀은 백팀끼리 애초에 초반부터 나눠서 진행하는 거면 모를까 이렇게 흙수저 금수저 느낌나게 갈라치기하면서 경쟁을 펼친 점도 새롭다.
사람들이 공정성에 대해서 분노하는 건 아무래도 세상이 공정하지 않은 걸 알지만 그래도 흑백요리사를 통해서 위로를 받았는데 거기에서 약간의 상처를 받았기 때문일 테다. 현실에서 공정하지 못한 걸 이야기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도 않고 그 누구도 관심이 없는 거 같아 실망했는데 드디어 재미있는 경연 프로그램을 보며 그래도 이 세상은 공정하지 하면서 자신을 위로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 균열이 가다 보니 더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꽤나 공정한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정도로 몰입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고 나는 보면서 이 정도 반응이면 보는 사람도 멘탈이 강하지 않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애초에 세상에 나가서 경쟁을 해보면 변수가 상상을 초월하게 많은데 그런 사회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요즘 들어 더 많다 보니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조금더 쉽게 상처를 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제 다음 주면 최종 우승자가 나온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미 이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름을 어느 정도 알린 사람들은 전부 다 우승자로 봐도 무방할 듯하며 이게 제작진의 의도로 보이기도 해서 이미 성공한 예능 그리고 잘 만든 경연 예능의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도 충분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다. 이 정도로 재미나게 만들면 정말 반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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