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최강럭비 죽거나 승리하거나 후기

 럭비의 국내 인기와 반비례하는 재미 

럭비를 좋아하나?

아니오 

우리 나라에서 럭비가 인기 많은 스포츠인가?

아니오 

럭비에도 상업 리그가 있는 걸 알았나?

아니오 

장시원 PD 의 최강 야구를 본 적이 있나?

아니오 

최강럭비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나?

아니오

럭비를 해 본 적이 있나?

???

놀랍게도 나는 럭비를 한 번 해 본 적이 있다. 

그것도 미식 축구의 나라 미국에서 말이다. 이게 무슨 멍멍이 득음하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긴 하지만 실제가 그러하다. 때는 바야흐로 10대 중반, 없는 살림에 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다소 가성비 좋은 영어 캠프에 부모님은 나를 보내게 된다. 없느 살림이었지만 미국에서 한 달이나 하는 영어 연수였기에 부모님 입장에서는 분명히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을 텐데 우리 엄니는 나를 마치 올림픽에 보내는 감독마냥 너에게 하는 투자라고 하며 흔쾌하게 그리고 나름 비장하게 보내 주셨다. 

한 달 간의 생활은 의외로 재미있어서 지금도 즐거웠던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 텍사스 근교 캠핑장에서 숙식을 해결했는데 당시에 체육 활동으로 하던 게 바로 럭비였다. 미식축구는 아무래도 장비가 있어야 하기에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럭비는 과격하게 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할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몸쓰는 일에 관심이 없던 나는 당연히 잘 하진 못 했으나 덕분에 럭비의 규칙을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로 내 인생에 럭비는 없었다.

하는 건 고사하고 제대로 본 적도 없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호주 럭비 경기장에서 청소 일을 하며 아바타처럼 피지컬이 다른 호주 남자 럭비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잠깐 본 적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럭비와 아니 스포츠 자체와 거리가 있던 나는 국내에서 아무리 인기가 많다고 하는 스포츠 관련 예능도 전혀 챙겨 보지 않았다.

그래서 최강럭비 역시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한 번 보기 시작했다. 

애초에 넷플릭스에서 공개하면 한 번 정도는 챙겨 보게 된다. 어제 4회차가 공개되었고 매주 3회차씩 공개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2회차씩 공개가 된다. 프로 리그 선수들만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무팀도 나오고 대학팀도 나온다. 내가 고려대를 나오긴 해서 고려대 선수들을 응원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애초에 학교 자체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 그런지 안암에서 거주하던 시절에도 애교심이라는 건 발톱의 때만큼도 없던 사람이라 마음 속으로 응원을 하게 되지는 않았다.

사실 관심이 없었다.

초반에는 프로와 대학이 상대가 될까 싶었다. 

실제로 고려대와 한국 전력의 경기를 보면 초반을 제외하면 아예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건 뭐 당연한 일이다. 돈을 받고 운동하는 사람들과 대학 리그에서 뛰는 사람들의 실력 차이는 월등히 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럭비 리그가 우승 상금이 0원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 돈을 받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프로이기에 그러하다. 

럭비는 국내 한정으로 그렇게 인기가 많은 운동은 아니다. 

호주 같은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제대로 상업 리그가 있는 나라도 드물다. 우리 나라에도 럭비 상업 리그가 있는 걸 나는 최강럭비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당연히 대학 팀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높은 연봉을 받기도 힘든 데다가 그렇다고 해서 외국으로 나가서 운동을 할 수 있는 피지컬도 아니기에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아시아에서는 그나마 일본이 럭비 프로 리그가 활성화 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일본은 인구만 1억이 넘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무리 비인기 종목이어도 확실히 저변이 넓긴 하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잘 하는 선수들 중에서 일본 럭비 프로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도 있다고 들었다. 

최강럭비 죽거나 승리하거나는 총 7팀이 참여한다. 

프로 팀은 4팀이다. 초반 대진운을 정하는 가벼운(?) 경기를 할 때 당연히 프로팀이 압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무도 은근히 잘하고 고려대의 활약도 눈이 부신다. 그런데 보면서 너무 당연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이거 한국 사람들 보라고 만든 거 맞나?

럭비 자체가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스포츠가 아니다 보니 야구나 축구처럼 예능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예 이걸 만들고 싶어한 방송사나 제작사가 있었을까 싶었는데 방영을 넷플릭스에서 하는 거면 이해가 간다. 미국에서는 일단 미식 축구가 인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서 럭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잘만 만든다면 미국을 포함 럭비의 인기가 높은 서구권에서 충분히 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애초에 한국 럭비 선수들의 실력은 세계 수준은 아니기에 피 땀 눈물에 초점을 맞춘다면 재미는 따놓은 당상 아닌가. 장시원 pd는 애초에 도시어부와 최강야구로 예능을 잘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해서 예상은 했으나 역시나 재미있다.

럭비를 개뿔도 몰라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순수하게 재미있다.

나도 잘 몰랐던 세세한 럭비 규칙을 설명해주는 것도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뻘하게 터지는 자막도 웃겼다. 선수들이 섹시하다고 놀리니 바로 이름 자막 위에 섹시 가이를 붙이는 식인데 이게 좀 어이없게 터진다. 

게다가 돈을 많이 들인 티가 난다. 

넷플릭스에서는 확실히 이제는 드라마보다 예능에 좀 힘을 주려고 하는 듯하다. 한국 예능들이 대박이 난 사례가 많기도 했고 내가 보기에도 한국 예능 pd들의 능력치는 상상 이상으로 좋다. 과거에는 우리 나라 예능 감독들도 일본 예능 따라하기에 급급했다.

과거 90년대 국내에서 인기를 모았던 예능 포맷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다 일본에서 그대로 가지고 온 경우가 많았다. 다큐멘터리 3일 같은 교양 프로그램도 NHK 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지고 온 걸 알면 사람들은 놀랄 테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전국 노래 자랑도 일본에서도 비슷한 포맷이 과거부터 있었다.

일본과 우리 나라는 정서가 비슷해서 그런지 이런 사례가 정말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나라도 다른 나라의 예능을 가지고 오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우리 나라 자체가 예능에 있어서 미국보다 더 괜찮은 결과물을 뽑아내기에 그러하다. 복면가왕같은 경우 미국에서 판권을 사가서 현지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기도 한 걸 보면 신기하긴 하다. 

애초에 크게 기대를 안 한 것도 있으나 온전히 피지컬만 믿고 싸우는 모습이 자극적이긴 하다. 그리고 보면서 왜 서양 선수들과 동양 선수들의 체급 차이가 어쩔 수 없는 경기력 차이로 이어지는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일단 타고난 체형과 피지컬 자체가 다르면 게임 결과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모든 운동이 다 그러하지만 럭비나 미식 축구는 선수들의 피지컬이 의지하는 측면이 더 강력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전력과 고려대의 경기를 보면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같다. 

다른 점이라면 여기서 승리자는 항상 여러 명의 골리앗이라는 사실이다. 체급 차이가 어마무시하다. 아마 서양 선수들과 대결을 하면 어떤 그림이 나올지 충분히 예상이 가는 부분이다. 그래서 럭비를 전문으로 하는 선수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부와 명예를 누리기 힘든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럭비 자체를 너무 사랑해서 이 운동을 하고 계시는 거 아닌가. 올림픽 정식 종목도 아니고 아시안 게임에서만 채택하고 있는 데다가 일본이 항상 금메달을 따오는 터라 군면제를 받기도 힘든 종목일 텐데 본인들이 좋아서 하고 있는 거라면 이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럭비에 임하고 있는지가 눈에 선하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감동적이다.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모든 에너지와 노력을 기울이는 걸 보는 게 신기하다. 연예인들처럼 이를 바탕으로 인지도를 쌓거나 광고를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유명세를 얻기도 사실 어렵다고 본다. 럭비 자체가 국내에서는 인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럭비를 즐기고 피터지게 싸우는 모습은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오히려 미국이나 호주처럼 럭비나 미식 축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포맷이긴 하다. 애초에 대학 팀과 프로 팀을 같은 리그에서 뛰게 한다는 설정이 우리 나라 만의 독특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럭비라는 자체가 진입 장벽이긴 한데 나같이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제대로 안 챙겨 보는 사람도 재미있게 보았다. 한전과 고려대 경기는 조금 싱겁게 끝나긴 하였으나 이후 진행될 프로 팀과의 경기는 어느 정도 기대를 모은다. 

그나저나 이런 프로그램은 나중에 꼭 출연진 중 한 명의 학폭 논란이 뜨기도 하던데 이번에는 그런 논란이 제발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초반에 왜 장시원 pd가 진행을 맡는 건지 의아했는데 돌이켜 보면 장시원 pd는 유명한 예능인이 진행을 하면서 관심이 분산되는 것보다는 오로지 유명하지 않은 럭비 선수들이 이번 기회로 대중에게 더 많이 노출되기를 바랬을 거 같기도 하다. 

나도 보면서 아는 선수가 한 명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으로 럭비가 국내에서 인기를 모을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관심을 받을 거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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