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성장 서사일지라도
십대 중반 시절 없는 형편에 어머니는 돈을 긁어 모아 나 영어 공부 좀 시켜 보겠다고 30일 동안 어느 종교 단체에서 진행하는 방학 영어 캠프에 보내 주었다. 미국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하는데 금액이 지금 생각해도 저렴한 정도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가끔 힘들긴 하였으나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현명한 선택에 가장 득을 많이 본 건 결국 나였다는 생각이 든다.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모아서 텍사스 근교에서 캠프를 하며 지내는 거였는데 텐트를 치고 지내는 건 당연히 아니었고 통나무로 지은 나름 튼튼한 오두막에서 생활을 하는 일정이었다. 5일 정도는 여행을 하고 나머지 25일 정도는 종교 활동 및 영어도 배우면서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하는 거였는데 기도와 찬송도 하지만 럭비도 하고 합창단도 운영하는 등 나름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운동은 별로 안 좋아해서 합창단의 일원으로 활동을 했는데 미국의 교회에 가서 찬양을 하는 등 나름 활동도 활발하게 했었던 기억이 난다. 매일 그래도 2시간 이상은 합창 연습을 했는데 이게 겨우 한 달 동안 활동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재미있었다.
아마 당시에 내가 노래하는 걸 좋아했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뭐 그 당시에는 다들 친하게 지내긴 하였으나 전국구에서 모인 관계로 이후에 따로 만나거나 연락을 이어 나가지는 못 했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다큐멘터리로 공개된 합창단 역시 디트로이트 합창단을 다루고 있다. 디트로이느 하면 과거에는 자동차의 도시였으나 지금은 나름 쇠락하여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중 하나로 꼭 언급이 되고는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독 유색 인종이 많이 사는 도시이기도 하다. 말이 디트로이트 합창단이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흑인인 것만 봐도 말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아메리카 갓 탤런트 라는 미국의 인기 티비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부터 인기를 모았고 이번 다큐멘터리에서는 무려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카네기홀 공연은 워낙 대단한 예술가들만 하는 거여서 더 놀라운데 당연히 단독 공연은 아니고 12분 가량의 공연을 위해서 오디션을 보고 연습을 하는 과정이 나온다.
무엇보다 이 합창단을 이끄는 앤소니 라는 단장님이 참 대단해 보인다.
이 분이 정말 대단한 게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면서도 엄할 때에는 엄하게 꾸짖는 모습이었는데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이들이 버릇없이 굴거나 실수를 하면 그 누구보다 엄하게 대하는 게 더 인상적이었다. 합창단을 이끌기도 하지만 편부모 가정이 많고 아버지들이 감옥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해주기 위해서 본인이 일부러 악역을 자처하는 모습도 멋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합창단원 아이들이 앤소니를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로 대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아마 앤소니가 아니었다면 DYC가 이 정도로 유지되지도 않았을 거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아이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합창단의 주인공은 무엇보다 앤소니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실력이 애매한데 재능만 있었던 아이들이 공연과 훈련을 통해서 실력이 늘어가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흥미로웠다. 어린 시절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예술가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런 합창단의 경험은 자신감과 자존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심지어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했다는 사실은 나도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인간은 생각한 대로 되는 터라 이러한 경험과 자극은 인생에서 쉽게 얻기 힘든 자양분이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아이들은 성장하고 몰라보게 달라진다.
그러한 과정을 바라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시청이 즐겁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입시에 함몰되어 제대로 된 재능의 기회를 발현하지도 못 하는 거 같아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 나라의 입시 제도는 과거부터 바꾸려고 부단히 정부에서도 노력을 많이 했으나 워낙 기득권 층의 열망이 가득한 터라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이제 출산율도 박살나고 했으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으로 교육 시스템을 근본부터 한 번 바꿔 보는 건 어떠할까 라는 생각도 든다.
음악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합창단원들이 다 아마추어인 관계로 어마무시한 음악적인 전율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기는 한데 그저 아이들의 성장 서사 하나만으로도 볼만하니 무조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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